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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이야기 유의미한 주요 사료를 소개하고 그 배경과 맥락을 정리해 제공합니다.

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의결됐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습니다. 거대 야당들의 정략에서 비롯된 ‘억지’ 탄핵은 한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5월 14일 탄핵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오점을 남긴 탄핵정국의 배경과 국회 발의에서 가결 과정, 탄핵 반대 촛불시위, 헌법재판소의 심판 소송을 재구성했습니다.

제17대 총선 정치권 심판 … 헌재는 탄핵 기각

탄핵정국③

 

그날(탄핵안 가결) 밤부터 잠을 잤다. 식사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직원들이 계속 기다리기 때문에 세 끼 밥은 제때 먹어야 했다. 그 시간 빼고는 계속 잤다. 자도 자도 잠이 끝없이 밀려왔다. 일주일을 자고 나니 정신이 들고 기운이 났다. 책을 읽었다.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내가 거실에서 책을 읽으면 아내는 안방에서 읽었고, 내가 탁자에서 읽으면 아내는 소파에서 읽었다. 자리를 바꾸어 가며 낮에는 책만 읽었다. 오후 6시가 넘어 부속실 직원이 퇴근하면 그제서야 관저 마당으로 나갔다. 관저 인수문 밖으로 나간 일은 거의 없었다. 오찬 모임을 가끔 했던 상춘재에 갈 때도 앞뜰에는 나가지 않고 사잇문을 통해 뒤뜰에만 갔다. 툇마루에 앉아 뒤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내와 둘이 거기 앉아 옛날이야기도 하고 책 이야기도 나누었다. 아주 가끔 몇 사람의 참모들과 뒷산에 올라간 것 말고는 63일 동안 관저를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운명이다> 237~240쪽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이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 청와대에 유폐된 대통령은 비서실의 요청으로 식목일 식수 행사에 응한 것 말고는 책 읽고 산책하는 걸로 소일했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전자우편으로 격려메일을 보내왔다. “대통령 뒤에 국민들이 있으니 절대 용기를 잃지 말라”고. “대통령님 힘내세요”라고.


▲ 탄핵 기간 중 청와대 관저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대통령. 노 대통령은 책을 읽거나 권양숙 여사와 경내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거에서 표출된 성난 표심 ··· 열린우리당 제1당으로

직무정지 한 달 만인 4월 11일 대통령은 출입기자들과 청와대 뒤 북악산에 올랐다. 계절은 옷을 갈아입어 완연한 봄이었으나, 대통령에게 봄은 오지 않았다. 대통령은 “내가 봄을 맞이하려면 심판을 두 개(헌재 탄핵 심판과 4·15총선 지칭) 거쳐야 되지 않느냐”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기자들이 묻는 정치 전망에 대해 조심스럽게 “(총선 이후) 정치의 성격이 부패정치, 지역정치라는 고질이 해소되는 방향으로 달라질 것이고, 관계도 과거의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보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 통합의 정치가 시도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정치가 혼란과 갈등을 겪었는데, 이는 새로운 질서를 태동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읽고 있는 링컨 책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4월 15일, 제17대 총선이 실시됐다. 선거결과는 국민들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치권 심판과 노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으로 나타났다. 여권인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탄핵 후폭풍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새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이 121석으로 가까스로 개헌 저지선을 방어했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10석으로 약진했고, 민주당은 9석으로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선거가 끝나고 21일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남을 가졌다. “과반이 넘는다고 내세우기보다 모든 것을 협상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것과 총선 결과에 교만해선 안 된다는 점을 당부”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겸손하고 신뢰 주는 정치를 하자”고 강조했다.

 

최종 변론, 통치행위 전반 정치공세 vs 국회 탄핵 소추의 법적 하자

4월 20일, 헌재에서 변론이 재개됐다. 4차 변론에서 측근비리 증인으로 채택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희정 전 노무현 대선캠프 정무팀장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최도술 씨는 검찰과 특검, 법원에 이미 진술한 기록이 있다며 증언을 거부했고, 안희정 씨는 소추위원 측의 신문에 적극 대응했다. 신문 과정에서 소추위원들이 기존 검찰 조사내용을 반복하여 재판부로부터 몇 차례 제지를 받았다.

이어 23일 열린 5차 변론에서는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소추위원은 여씨를 상대로 썬앤문과 롯데쇼핑 후원금 수수에 대한 노 대통령의 관련성 여부를 추궁했으나 “대통령과 상관없는 일이었다”는 진술만 들었다. 그리고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은 건강 악화로 증인 채택이 취소됐다. 이날 공판에서는 헌재가 보류해놨던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 여부와 소추위원 측이 요구한 다른 증인·증거 신청이 대부분 기각됐다. 다만, 검찰의 측근비리 내사기록 신청은 받아들여졌으나, 검찰은 자료 제출이 수사기밀 누출 및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 법 위반이어서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헌재는 30일에 최종 변론을 열었다. 최종 변론에서 소추위원 쪽은 주어진 시간 30분을 넘겨 2시간 가까이 노 대통령의 발언과 통치행위 전반에 대한 정치공세로 탄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기춘 소추위원은 “대한민국 호의 선장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이미 기울기 시작한 배가 어디로 표류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통령 변호인단은 국회의 탄핵 소추의 절차와 내용 하자를 재차 강조했다. 하경철 변호사는 “탄핵 소추 의결에서 국회 관행이라는 이유로 적법 절차를 위반했기에 절차적 하자만으로도 각하되거나 기각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양삼승 변호사는 “대통령은 공무원임과 동시에 정치인으로 선거법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무원에 해당되지 않고, 설사 해당된다고 해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탄핵 사유의 부당함을 변론했다. 마지막에 나선 한승헌 변호사는 “국회가 뒤집어 놓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국회도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상식을 일깨워주어야 한다”며, “거대 야당의 횡포로 비롯된 진통을 헌정을 바로 인식시키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탄생시키는 계기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이 끝나자 소추위원 쪽 대리인인 한병채 변호사가 예정에 없던 추가 변론을 신청하여 “헌재 재판이 최종 변론시간을 30분으로 제한해 재판을 망가(만화의 일본말)로 만들었다”는 막말로 물의를 빚었다. 이에 대통령 변호인단 측 양삼승 변호사는 “헌재 재판부의 소송지휘로 피청구인에게 주어졌던 마지막 발언권을 빼앗아간 것은 위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윤영철 재판장은 “한병채 변호사의 망가 발언은 유감”임을 지적한 뒤 변론을 종결했다.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 … 대통령 직무 복귀

최종 변론이 끝남에 따라 헌재는 평의를 잇달아 열고 결정문 작성에 들어갔다. 선고를 앞두고 열린 평의에서는 결정문에 재판관들의 소수 의견을 공개할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논란 끝에 “법률 취지가 소수 의견을 공개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정리했다.

5월 14일 오전 10시4분 헌재 대심판정.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에 대한 선고가 열렸다. 이날 선고는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윤영철 헌재소장은 개정 직후 곧바로 결정문을 읽어 내려갔다. 노 대통령의 변호인단과 소추위원 대리인단, 방청객 모두는 상기된 표정으로 윤 소장이 낭독하는 결정문 자구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윤 소장은 “국회의 탄핵 소추 절차가 적법절차에 위배되었고, 탄핵소추가 부적합하다는 주장은 국회의 재량 사항이라 이유 없다”고 하고, “대통령이 직위를 이용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선거에서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현행 선거법을 ‘관건선거 시대의 유물’로 폄하한 것은 헌법 수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소추위원 측의 선을 들어주자 법정이 술렁였다.

이어 결론에 이르러 “대통령을 파면할지 여부에 대해 판단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모두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 윤 소장이 “직무행위로 인한 모든 사소한 법 위반을 이유로 파면해야 한다면, 이는 피청구인의 책임에 상응하는 ‘법익 형량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운을 떼자 기각 주문을 확신한 대통령 변호인단에서는 안도가 흘러나왔고, 소추위원 대리인단의 낯빛은 흑색으로 변했다.

윤 소장은 계속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 박탈 효과와 국정공백과 국론분열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므로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며,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 위반 행위가 헌법 수호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을 맺었다.

헌재의 결정은 탄핵 심판 청구의 ‘기각’이었다. 헌재는 대통령의 △2004년 2월 18일 경인지역 6개 언론사와 벌인 기자회견과 △같은 달 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회견 도중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고, △2004년 3월 4일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에 대한 유감 표명, △2003년 10월 13일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행위는 헌법상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그 밖에 소추위원 쪽이 청구한 선거법 위반 사유는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다른 탄핵 사유인 대통령의 측근비리와의 관련성에 대해 “소추위원 쪽이 제출한 모든 증거에 의하더라도 노 대통령이 측근비리를 지시·방조한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소추 사유는 이유 없다”고 결정했고, 또한 경제 파탄의 책임에 대해서도 “그 자체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상의 각하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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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결정은 한 마디로 “대통령이 일부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범법행위는 아니다”라는 논리였다. 반면, 국회가 탄핵 소추안 가결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어겼다는 대통령 변호인단의 지적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머지 탄핵 사유인 측근비리 연관성과 경제파탄 책임이 기각되거나 각하됐음에도 부실한 탄핵 소추를 강행한 국회의 잘못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편, 재판부는 소수 의견 비공개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법(제34조1항)에서 평의의 비공개 강제 규정과 합의부 재판 때 합의의 비공개 원칙은 오랫동안 확립된 법원조직법의 법리”임을 들었다. 소수의견과 찬반 의견을 밝힌 재판관의 수가 공개되지 않아 9명의 재판관들이 각각 어떤 의견을 냈는지는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수 의견을 결정문에 무리하게 녹여 넣어 논리적 일관성이 흔들렸다”는 지적도 대두됐다.

헌재에서 탄핵 심판 선고에 걸린 시간은 25분여. 헌재의 선고로 63일 동안의 초유의 국정 공백 사태는 끝이 났다. 대통령에게는 그 시간이 긴 암흑의 시간이었다. 결정 선고 후 대통령 대리인단인 문재인 변호사는 기뻐하면서 “일부 인용된 부분은 겸허히 수용한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소송 도중 병석에 누운 대리인단 유현석 변호사의 병세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반면, 김기춘 법사위원장은 “새로운 대통령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며 소회를 밝혔으나, 일부 소추위원 대리인은 “헌재의 판단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헌재 앞에서 선고 전날 밤부터 결과를 기다린 시민들은 환호했다. 각 지역마다 탄핵 기각을 반기는 축하행사와 참여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인터넷에서는 탄핵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벌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복귀는 국민의 승리”라고 밝혔다.

 

탄핵 파동이 남긴 것

대통령은 헌재의 ‘기각’ 결정 후 곧바로 직무에 복귀했다. 복귀 첫 일정으로 수석·보좌관들과 오찬을 함께 들며 경제 현안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이어 오후에는 집무실에서 밀린 각종 현안을 챙기는 한편, 저녁에 고건 총리를 만나 미국-이라크 상황과 6자회담 등 외교와 경제 상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5월 14일 헌재의 탄핵 소추안 '기각'결정이 내려진 뒤 대통령이 참모진들의 환영을 받으며 등청하고 있다. (대통령 좌측) 정상문 총무비서관, 박기영 과학기술보좌관.

다음날(15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업무복귀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란 담화에서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해 “당장의 성과에 급급하기보다 10년, 20년을 내다보면서 국정의 올바른 방향을 잡아 일관성 있게 해나가겠다”며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원칙’을 지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특히 연설에서 경제 관련 부분을 많이 할애하면서 “경제가 어렵다고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써 몇 년 뒤 더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장기적인 잠재성장력을 키우고 기초체력을 다지는 ‘경제정책’을 착실하게 추진해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정치에서는 “화합과 상생의 정치를 위해 상대를 존중하겠고, 대화와 타협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업무 복귀에 즈음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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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21일)에는 탄핵정국의 뇌관이었던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됐다. 검찰이 밝힌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한나라당 823억 원, 노무현 후보 캠프 119억 원이었다. 검찰은 “수사 9개월 동안 정치인 13명 구속, 19명이 불구속 기소됐고, 기업인 13명은 형사 처벌됐으며,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모금에 직접 관여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증거가 없어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한편, 집권 2기를 맞은 참여정부는 이후 정부 혁신, 튼실한 경제, 지방화와 동북아경제 등을 중심 과제로 ‘개혁’에 속도를 냈다.

정치권 비리 수사와 거대 야당의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세에서 비롯된 탄핵 파동은 한국 정치사에 오점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촛불 시위의 등장과 민주주의의 발전, 또한 탄핵 관련 입법의 보완 문제도 과제로 남겼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민의를 거역한 의회 중심의 ‘대의 민주주의’ 에 대한 견제장치로 국민이 나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현됐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 초기 탄핵에 반대해 전국적으로 번진 촛불 집회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다수의 정치세력이 여론을 무시할 경우 국민이 직접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회의 대통령 탄핵과 헌재의 탄핵 심판 과정을 통해 탄핵 관련 입법의 부실 문제도 드러났다. 이에 장기적인 과제이긴 하지만, 개헌을 통해 국회의 탄핵 소추 의결 조항을 재검토할 필요성도 대두됐다. (끝)

 

  • 권영준/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
  • 2013.01.28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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