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오전 11시56분 국회 본회의장.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고함을 비집고 스피커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총 투표수 195표 중 가(可) 193표, 부(否) 2표로 헌법 제65조2항에 의해 대통령 노무현 탄핵 소추안은 가결됐습니다.”
박 의장이 의장석에 선 채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의사봉을 내리쳤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환호와 만세 소리가 터졌고, 우리당 의원들이 던진 구두와 서류가 의장석을 향해 날아들었다.
박 의장은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산회를 선포했다.
박 의장이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본회의장을 빠져 나가자 투표에 참여했던 의원들도 하나둘 퇴장했다. 회의장에 남은 우리당 의원들은 무릎을 꿇고 “쿠데타를 막지 못한 걸 국민들께 사죄드린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호권 발동으로 역부족이었다고 하지만, 처리시한 마지막 날 무너졌다는 데 가슴을 쳤다.
총칼 없는 쿠데타 … 국회의 탄핵안 가결
의원들 간 몸싸움은 이날 새벽부터 시작됐다. 전날, 탄핵안 상정이 무산된 뒤 우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예결위 회의장에서 각각 농성을 이어갔다. 밤이 깊어가면서 쪽잠을 청하는 우리당 의원들이 늘어가던 3시52분,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20여 명이 본회의장에 들이닥쳐 의장석 쟁탈전을 벌인 끝에 휴전에 들어갔다.
오전 10시, 김근태 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의장실로 박 의장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10시10분경 본회의장에 민주당 의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11시가 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장했다. 이후 7분여가 지나자 약속이나 한 듯 박 의장이 경위들에 둘러싸여 본회의장 옆문을 통해 들어섰다. 그리고 막바로 경위들은 의장석을 에워싸고 있던 우리당 의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의석에서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당 소속 의원들과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지휘했다. 경위들에게 멱살과 허리춤을 잡힌 우리당의 이해찬·천정배·이부영·이종걸·신기남·최용규·이호웅·김희선 의원이 차례로 끌려 나갔고, 유시민 의원은 사지가 붙들린 채 들려 나가면서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절규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장영달 의원이 끌려 내려오자 박 의장이 의장석에 올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박수가 터졌고, 우리당 의석에서는 “의장 물러나라”, “쿠데타 중단하라”는 고함이 터졌다. 11시22분 개회 선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상정됐다. 제안 설명은 유인물로 대체된 뒤 곧바로 투표에 들어갔다.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의석 앞을 둘러쌌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기표소 가림막을 열고 투표하자 우리당 의원들은 “공개투표 무효”를 외쳤다. 투표는 11시50분경 종료됐다. 우리당 의원들이 의원석에 올라가 “표결 무효”를 외치며 애국가를 불렀다. 이어 이들은 긴급총회를 갖고 의원직 사퇴를 결의했다.
“국민과 헌재 판단 믿고 겸허히 기다리겠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던 그 시각.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창원 소재 전동차 제조업체인 (주)로템 공장을 시찰 중이었다. 대통령은 이날 아침 창원 외동 산업단지공단에서 열리는 경남지역 혁신보고회의 참석차 청와대를 나서면서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잘잘못을 떠나 국민들께 오늘 같은 대결국면과 탄핵정국에 이르게 된 것을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 전날(11일) 가진 특별기자회견에서는 대선자금 및 측근·친인척 비리에 대해 해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으나, 선거법 위반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은 “재신임, 탄핵 등 진퇴가 걸린 문제는 총선 결과를 존중해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상응한 정치적 결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나 헌정이 부분적으로 중단되는 중대 사태를 놓고 정치적 체면 봐주기, 흥정과 거래를 하는 것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이롭지 않다”며 굽히지 않았다.
탄핵안 가결 소식은 대통령이 공장 시찰을 마치고 오찬 장소로 이동 중에 전해졌다. 대통령은 오찬장에서 생산현장 직원들을 격려하면서 남은 일정들을 소화했다. 이어 오후 2시 진해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뒤 청와대로 복귀했다.
▲ 국회에서 탄액안이 가결되던 날(3월 12일) 노 대통령은 경남 창원 소재 (주)로템 공장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청와대에 돌아온 대통령은 고건 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차질 없는 국정 수행을 당부하면서 “법적 판단과 국민의 판단이 남은 만큼 겸허히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에는 관저에서 수석보좌관들과 만찬을 함께 들었다. 이날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에 대해 이렇게 소회를 피력했다.
“저는 항상 원칙을 지키다 정치권의 비주류와 소수로 살아왔습니다. 3당합당 때도 YS를 따라가지 않아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정치 지도자는 원칙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키며 많은 시련을 받고 도전해왔습니다. 그 원칙이란 것이 정치권에서는 때로 과격으로 비판받아 왔고, 타협을 모른다는 따돌림도 받았습니다. 분열에 반대하고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원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치에서 원칙을 버리고 좋은 게 좋다고 타협하면 결국 국민에게 손해가 되고 정치는 제자리걸음 하거나 퇴보합니다. 이것은 변화를 위한 진통입니다. 좌절하지 않고 또 이 고통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국민도 혼란스럽고 고통을 겪고 있고, 나 또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힘을 냅시다. 역사는 앞으로 갑니다. 우리 국민은 위대하고 현명합니다. 역사와 국민을 믿고 갑시다.”
- 2004년 3월 12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중
대통령 직무정지 … 헌법재판소 심판 착수
국회의 탄핵안 가결 소식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날 국회 앞에서는 1만 5천명의 시민들이 모여 범국민대회를 열고 ‘16대 국회 장례식’과 함께 ‘탄핵 무효’를 외쳤다. 인터넷 포털의 토론 게시판에서는 네티즌들이 ‘한국 정치 근조 리본(▶◀)’을 이어 달며 국회를 성토했다.
이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김기춘 한나라당 의원)이 헌법재판소와 청와대에 보낸 탄핵의결서 정본과 사본이 각각 접수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는 12일 오후 5시15분부로 정지됐고(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탄핵 심판(2004헌나1)에 착수했다. 판사는 헌재의 전원재판부가 되고, 국회 법사위원장이 소추위원으로 검사, 대통령이 피고인이 됐다. 재판장은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주심은 9명의 재판관 중 무작위 추첨으로 주선회 재판관으로 정해졌다. 당시 헌재는 김경일·김영일·전효숙(대법원장 추천), 윤영철, 주선회, 송인준(김대중 전 대통령 추천), 권성(한나라당 추천), 이상경(민주당 추천), 김효종(한나라·민주당 합의 추천)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리를 앞두고 헌재는 헌법재판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회의 탄핵 발의 및 처리 절차가 적법했는지, 국회가 소추안에 적시한 △선거법 위반, △대선자금 및 측근비리, △실정에 의한 경제파탄 등이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했다. 탄핵 심판은 탄핵의결서가 접수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탄핵이 결정되려면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과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했다.
12일에 이어 주말인 13일과 14일 광화문에서는 10만 명 이상이 참여한 탄핵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전국의 주요도시마다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다. 언론사들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 “탄핵이 잘못됐다”는 의견이 70%였으며,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80~90%를 넘었다. 15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는 탄핵 여파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한편, 헌재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장외에서의 법리 공방도 치열했다. 열린우리당이 “부적합하게 이뤄진 탄핵안 가결로 국정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제기한 탄핵안 가처분 신청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 제안한 탄핵 소추 취소, 소추위원 측의 탄핵 사유에 대통령의 총선-재신임 연계 발언의 선거법 위반 추가 추진 등을 놓고 법적 의견이 엇갈렸다.
그런 가운데 18일 헌재의 첫 평의(전체회의)가 열렸다. 평의가 열리기 전날, 노무현 대통령의 법적 대리인인 문재인·하경철 변호사는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헌재가 신속한 심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소송지휘권을 행사할 것”을 주장하고, “집중심리제를 채택하여 공휴일을 제외하고 언제든지 변론기일을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헌법재판소법 규정(제52조)을 들어 대통령 출석은 의무가 아니라 진술기회를 보장해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가급적 대리인을 통해 변론을 진행할 것과 만약 대통령이 출석하더라도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신분과 존엄에 상응하는 품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예우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소추위원 측이 제기한 탄핵사유 추가에 대해 “국회 의결이 아닌 사유 추가는 헌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결론에서 “탄핵 심판의 결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좌우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헌재의 엄정하고 정확한 심판은 역사가 위기를 통해 자신의 이념을 실현해나가는 심오한 진리에 빛나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핵사유와 절차의 위법성 놓고 법리 공방
헌재의 1차 평의 결과, 첫 공개변론 일시가 3월 30일로 잡혔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출석요구서가 발송됐다. 변론기일이 잡히면서 노무현 대통령 측 변호인단과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이 꾸려졌다.
노무현 대통령 변호인단으로는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간사) 외에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하경철 전 헌재 재판관, 유현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 이용훈 전 대법관, 이종왕 변호사, 양삼승 변호사, 강보현 변호사, 조대현 변호사, 윤용섭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 박시환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 김덕현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겸 변호사 등 12명이 참여했다.
반면, 소추위원단은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을 비롯해 한나라당과 민주당 율사 출신 의원들과 대리인은 이시윤 전 감사원장, 한병채 전 헌법재판관, 정기승 전 대법관, 안동일·임광규·민병국·김기수·이진우·김동철·박준선·조봉규·하광용·김용균·손범규 변호사로 구성됐다.
한편, 그주 주말인 20일, 전국은 촛불의 바다였다. 광화문에서 3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40여개 주요 도시를 비롯해 미국·캐나다·호주 등 해외에서 교민들이 ‘탄핵 반대’ 촛불시위에 동참했다.
노무현 대통령 변호인단은 22일 헌재에 1차 답변서를 제출했다. 답변서는 대통령 발언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기자회견 과정에서의 일반적인 견해 표시는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선거법 위반의 최종 판단은 선관위가 아니라 법원의 판결로 확정되는 만큼 법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 탄핵안에서 노 대통령을 측근비리 공범으로 단정짓거나, 확인되지도 않은 열린우리당 총선 전략문건을 청와대의 조직적 선거개입으로 규정하는 등 탄핵사유와 절차면에서 위헌적 요소가 있는 만큼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3일에는 탄핵사유의 부당성과 절차상 하자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2차 답변서를 통해 “선거법(제9조1항)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공무원에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공무원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헌재의 판례”이고, “대통령은 국가공무원법(제2조3항)에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정무직 공무원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정당법(제6조1호)에 의해 정당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는 등 정당 활동이 허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다른 탄핵사유인 측근비리와 국정파탄 부분도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탄핵 소추 의결 절차상에서 “야당이 사실상 공개투표를 하여 헌법(제45조)이 보장한 국회의원 표결권을 침해하고, 제안 설명과 질의 및 토론 절차를 생략하여 국회법을 위반했다”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투표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투표 종료를 선언한 것도 문제”임을 적시했다.
대통령 측 “법적 하자 ” vs 소추위원 “문제없다”
한편, 24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했다. 반면, 박관용 국회의장은 “탄핵안 처리과정에서 국회법을 위반했다”는 대통령 변호인단의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보내왔다. ‘탄핵안 처리절차에 관한 국회 의견서’는 △탄핵안 상정 본회의 개의시간 무단 변경, △질의 및 토론절차 생략, △의장 대리투표 및 공개투표 논란 관련하여 “국회 관례”라고 일축했다.
소추위원 측인 국회 법사위도 29일 탄핵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회 법사위 의견서는 “대통령 탄핵 소추에 적시한 내용이 탄핵사유로 충분하고, 의결과정도 국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헌법 제정 당시 국회 속기록에 대통령의 탄핵사유는 구체적 위법사실뿐 아니라 대통령 직무수행 또는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의 위법행위에 대한 지휘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측근비리를 쟁점화하려는 의도도 드러냈다. 소추위원 측은 “탄핵사유인 측근비리와 경제파탄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증거조사는 당사자 간에 주장이 엇갈릴 경우 재판부가 사실관계 확정을 위해 당사자의 신청 혹은 재판부 직권으로 증인신문, 사실조회,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 변호인단은 “정치공방을 부를 수 있는 증거조사에 반대”를 주장했으나, 헌재는 “소추위원 측 신청이 적절할 경우 수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첫 공개변론을 앞두고 양 진영의 신경전이 팽팽한 가운데 대통령 변호인단은 29일 헌재에 노 대통령의 ‘변론기일 불출석 신고서’를 냈다. 대통령의 변론기일 불출석은 노 대통령이 변호인단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었다. 아울러 변호인단은 ‘심판절차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소추위원이 선임한 대리인이 변론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변호인단은 ”국회 법사위원장이 국회를 대표해 탄핵 소추의 직무를 담당하도록 법률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리인에게 직무를 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대리인을 선임하더라도 소추위원의 판단이 아닌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탄핵 심판의 첫 변론이 3월 30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노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다음 변론기일(4월 2일 오후 2시)만 정한 채 심리는 16분만에 종결됐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다음 변론기일에 피청구인인 대통령이 불출석하더라도 심판 절차는 진행되도록 되어 있었다. 이날 변론에서 소추위원인 김기춘 위원장과 대통령 대리인 하경철 변호사의 짧은 의견 개진이 있었는데, 김 위원장은 자신의 총선 출마를 이유로 2차 변론기일의 연기를 요청해 방청객들의 빈축을 샀다.
소추위원 측 색깔공세 … 대통령 측근 증인 채택
한편, 3월 31일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을 수사한 특검팀의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특검팀은 “이광재, 양길승 씨 관련 의혹과 최도술 씨의 썬앤문 그룹 감세 청탁 의혹은 사실무근이고, 대선을 전후해 6억 1,000만 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사실만 확인했다”고 밝혔다.
4월 2일, 헌재에서 2차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변론에서는 탄핵사유의 정당성과 부당성, 증거신청 여부 등을 놓고 6시간 가까이 날선 공방이 벌어졌다. 공판이 시작되자 소추위원 측 대리인들은 또 다시 총선 뒤로 재판 연기를 요청했고, 재판부는 “선거와 헌법재판 모두 헌법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거부했다. 이어 벌어진 진술에서 소추위원 측은 그 동안 검찰과 특검에서 수사가 진행됐던 대통령 측근들의 위법 혐의와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를 장황하게 읽으면서 정치공세를 늘어놨다.
이에 맞서 대통령 변호인들은 소추위원 측의 ‘맹점’을 조목조목 반격했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측근비리는 이미 검찰과 특검에서 대통령과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반박하고, 선거법 위반 주장의 문제점과 국회의 탄핵 의결 절차의 하자 등을 따져 “위헌”을 주장했다. 특히 양삼승 변호사는 “대통령에게 선거 중립 의무가 있다면 국회의원은 선거 중립 의무가 없는가”라며 소추위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또한 제헌의회 속기록을 인용한 소추위원 의견서에 대해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의 위법행위에 대한 지휘감독 소홀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주장은 오독”이라며, “알고도 방치한 경우에만 책임이 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소추위원 쪽은 아무 반론도 제기하지 못했다.
공판 막바지에는 소추위원 측이 재판부에 “노 대통령을 포함해 29명의 증인 신청과 △청와대 방문자 명부, △대통령 측근인사 동향보고서, △선관위 회의록, △측근비리 연루자의 수사기록, △국무조정실 회의록 등 방대한 자료를 증거로 채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통령 변호인단은 “광범위한 증거조사는 국회 소추 의결의 근거가 부실하다는 방증”이라며, “대통령 증인 채택은 정치공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3차 변론은 1주일 뒤인 9일 오후 2시에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는 소추위원이 대통령 측근비리 관련해 신청했던 증인 가운데 노 대통령에 대한 직접 신문은 보류됐고, 최도술, 안희정, 여택수 씨와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 4명만을 증인으로 채택됐다. 그러자 소추위원 측 이진우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출석을 재차 요구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5공 청문회를 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폭언과 함께 명패를 던지고 부산시장 선거 때는 ‘내게 법, 법 하지 말라’는 등의 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며 “이런 철학은 러시아 볼셰비키를 연상시킨다”는 색깔공세를 폈다. 이에 대통령 변호인단의 이용훈 변호사는 재판부에 “탄핵 심판은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지 정치 공방의 장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다시 한번 당부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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