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구술자가 말하는 '노무현과 인연에 대하여'
"그만큼 매력적인 사람..., 만나기 힘들 거예요"
‘P.S. 노무현 - 먼저 간 그에게 남기다’는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에서 채록한 구술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에 대해 남기고 싶은 구술자들의 이야기를 발췌·편집한 영상입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구술자들의 인연과 추억을 몇 마디 말로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서거 3주기를 맞이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노 대통령과 인연을 간직한 구술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P.S. 노무현 - 먼저 간 그에게 남기다’에서는 모두 12명의 구술을 짧게 발췌·편집했습니다. 구술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존칭 생략).
■ 장 원 덕 / 1978년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 입사·현 법무법인 부산 사무국장
노 대통령이 대전지법 판사직을 정리하고 부산에서 변호사를 개업한 1978년 그해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에 입사했다. 초임 변호사 노무현, ‘노변의 동업자’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일했다. 노 대통령이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후 문 변호사가 1995년 설립한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 성 숙 희 / 1988년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지구당 여성부
1988년 제13대 총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통일민주당 부산 동구지구당 여성부원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초선의원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김규도 수석부위원장, 이석렬 사무국장, 여성부 김영자, 김순복 씨 등과 함께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민주당 당원으로 남았다. 이후 서울 종로로 원정까지 가며 선거 때마다 대통령을 도왔다.
■ 이 순 영 /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 지지연설원·현 부산 북구 구의원
현 민주통합당 부산 북구 구의원.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11년 후배인 남편을 통해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제16대 대선에서 당시 노 후보의 지지연설원으로 활동했다. 영상에서는 편집했지만 “노 대통령이 이 세상에 분명히 안 계신 거는 맞지만, 그래도 그분은 분명히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계신다는 것을 종교처럼 믿는다”고 말했다.
■ 신 영 호 / 노 대통령이 정치인 시절 애용했던 부산의 단골 이발사
부산역 앞 광장호텔 구내 이발소를 운영하던 1988년. 제13대 총선기간 중 찾아온 노무현 후보의 이발을 해준 게 인연이 됐다. 이후 2002년 대선 전까지 노 대통령이 부산에 들를 때마다 이발을 도맡았다. 노 대통령은 퇴임 후에 이발을 부탁하기 위해 다시 신영호 씨를 찾았고 대를 이은 아들 신은수 씨가 그 일을 맡았다.
■ 송 기 인 / 신부·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
1982년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때 변론단에 참여한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대통령에게 ‘유스토’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주기도 했다.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며 참여정부 때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촌놈인데” 그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 박 주 현 / 전 청와대 국민참여수석·변호사
참여정부 청와대 국민참여수석, 참여혁신수석,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 간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노 대통령이 남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진정성”이라며 “그 분은 약자에 대한 공감을,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옆에 있는 사람이 느끼는, 그런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믿는 것”이 진정성이라고 설명했다.
■ 이 정 우 / 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교수
대선 후보 시절 대선정책자문단에 참여하면서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를 거쳐 참여정부 청와대 초대 정책실장을 맡았다. 이후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역임했다. 노 대통령을 단기실적에 연연하지 않은,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난 최초의 장기(長期)주의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 조 상 훈 / 1988년 초선의원 시절 비서관
1988년 초선의원 노무현의 비서관으로 활동했다. 1990년 3당 합당 전까지 노동위 활동을 보좌하며 노 대통령과 노조 창립식, 조합원 특강을 비롯한 노동운동 지원활동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3당 합당 이후에는 후원회 업무를 주관하는 등 초선의원 시절을 함께했다. 이후 서울시의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사 등을 역임했다.
■ 박 종 희 / 1987년 울산노동문제상담소 설립 참여
1980년대 중반 울산 노동운동의 지원 역할을 했던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노 대통령과 교류했다. 울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초청강연, 1987년 울산노동문제상담소 설립 등의 활동이 매개가 됐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서 특히 노동자, 노동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였다.
■ 김 재 규 / 1981년 부림사건 피해자·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1981년 부림사건 피해자로 변론을 맡은 당시 노 변호사와 처음 만났다. 공해문제연구소 이사,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국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으로 ‘노변’과 80년대 부산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다. 3당 합당 이후에는 노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후보로 1992년, 1996년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고 호 석 / 1981년 부림사건 피해자·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감사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일 때 강제 연행된 1981년 부림사건 피해자. 변론과정에서 노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차장,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사무국장 겸 상임집행위원으로 ‘노변’과 부산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지켰다. 전교조 부산지부 부설 교육정책연구소 소장,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감사를 맡고 있다.
■ 김 원 기 / 전 국회의장
3선의 평화민주당 원내총무였던 13대 국회에서 통일민주당 초선의원 노무현을 처음 만났다. 3당 합당 이후 민주당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이후에는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서 함께 활동했다. 1997년 제15대 대선 전후 국민회의, 민주당에 같이 몸담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 후보의 정치고문을 맡았고 대통령 재임시절 국회의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