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
<책 ‘운명이다’ 중>
선거제도 개편이 새해 화두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의 중·대선거구제 전환에 대해 국회의원들도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요.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평소였으면 찬반이 명확하게 갈리던 여·야당이 의원 개개인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거제도 개편의 가장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 자신이기 때문이겠지요.
현재 우리나라 국회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내 지역 후보에 한 표,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한 표를 투표하는데요. 여기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전체 300개 의석 중 47석, 전체 국회의원 중 15%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출의 핵심은 소선거구제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지역구에서 한 명의 후보만 당선되는 제도입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정치인 1명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제도이기 때문에 유권자의 생각과 실제 국회의원 의석 수가 다를 가능성이 높은 제도이기도 합니다. 다만 좁은 범위의 선거구에서 1명의 정치인이 당선되는 만큼 유권자 입장에서 굉장히 직관적으로 결과를 알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부터 지금의 소선거구·단순다수제 선거제도가 우리나라 정치에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치는 정책 경쟁 보다는 지역대결, 정당 간의 이합집산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구조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역주의를 해소할 방안 중 하나로 내놓은 것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었습니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첫 페이지에는 ‘국회의원 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 전환을 추진하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겠습니다’라는 공약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중대선거구제를 지역주의 해소의 대안으로 내놓았던 걸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자신이 왜 선거제도 개편을 줄곧 말해왔는지 나와 있습니다.
“ 정책 개발보다는 다른 지역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선거운동 방법이 된다. 정책의 차이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감정싸움은 몸싸움으로 전환된다. 모든 정당에서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발붙이기 어렵다. 국회의원을 대폭 물갈이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경험한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 문제였다.
<책 ‘운명이다’ 중>
성숙한 민주주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루려면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바꾸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고 소수파가 생존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인재와 자원의 독점이 풀리고 증오를 선동하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
대통령이 된 후 선거제도 개혁을 향한 노무현의 노력은 계속됐습니다. 당선 직후 가진 새천년민주당 선대위 연수, 취임 후 첫 국회 국정연설을 살펴보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노무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다수당에 내각 구성권을 주겠다는 등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구제 개편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대로 구체적인 논의는 번번히 차단됐습니다.
대통령의 제안은 2005년에는 ‘대연정’ 제안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통령의 제안이 지역구도를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중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선거구제 개편 제안을 모두 외면했습니다.
“ 연정, 대연정하니까 이것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데 제가 원하는 것은 대연정보다는 선거제도 개혁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아무리 하려고 해도 안 되니까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이 선거제도는 좀 고치고 싶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이것은 꼭 하고 싶다 그런 뜻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제 개편의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의, 증오를 선동하는 정치는 우리 정치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임무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상적인 정치를 바랬던 대통령의 여러 제안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후원회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