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공동의 미래로”
다시 보는 노 대통령의 2007년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
지난 2월 10일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광명성 4호’를 쏘아올린 지 나흘 째였습니다.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재와 압박을 택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런 기조는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도 이어졌습니다. 다만 ‘앞으로 정부는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지만’이라며 ‘대화’를 언급한 대목이 이례적입니다.
참여정부는 북핵 위기라는 난제를 안고 출범했습니다. 안팎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북핵 불용’,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같은 원칙과 남북관계 당사국으로서 주도적인 노력을 통해 북핵 문제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습니다. 퇴임을 3개월여 앞둔 2007년 11월 13일, 한겨레통일재단과 부산시가 공동개최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노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통해 참여정부의 ‘북핵 문제 해법’을 돌아봅니다.
대화와 신뢰는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열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라, 즉각 강경한 대응을 하라, 압력을 행사하라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강경 대응 대신 참여정부가 택한 것은 교류협력 유지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북한은 체제의 안전과 관계 정상화가 보장되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확신과 남북의 문제는 대화로 풀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보다 확실한 흐름으로 굳혀 북한이 조속히 핵 폐기를 이행할 수 있게 하자’고 말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와 신뢰였습니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확고한 믿음은 연설문 곳곳에서도 드러납니다.
“대화가 아닌 압력 수단으로는 북핵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은 북한체제가 위협을 느꼈을 때 핵을 손에 잡았습니다.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를 약속받았을 때 핵 포기를 약속했습니다. 약속의 이행에 대한 불안이 생겼을 때 다시 핵 프로그램 개발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압력이 가중되었을 때 마침내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체제가 불안하거나 압력이 높을수록 사태는 더욱더 악화되어온 것이 과거의 경험입니다. 결국 대화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선 평화체제, 후 핵폐기’와 ‘선 핵폐기, 후 평화체제’) 두 가지 모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어서, 그리고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일이어서 어느 한쪽을 먼저 끝내고 다른 한쪽을 시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치로 보아서도 북핵 문제는 정전체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는 따로 갈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두 가지는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착점에서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순서를 가지고 싸우다가 대화를 깨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화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북한의 핵 포기 의사는 확실합니다. 북한을 응징하거나 굴복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대화에 의한 해결은 가능한 일입니다.”
6자회담 통한 평화와 번영…동북아 공동의 미래
그렇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참여정부는 왜 제재와 압박 대신 대화와 신뢰를 택했을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0·4 남북정상이 있고 한 달여 뒤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 노 대통령의 연설 주제는 동북아 평화와 번영이었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는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핵심적인 국정목표의 하나입니다. 왜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냐, 그런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안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서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 문제가 풀려야 동북아시아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동북아 구상을 담은 것이 2005년 9월 19일 제4차 6자회담을 통해 발표한 ‘9·19 공동선언’이었습니다. 북핵 포기를 최초로 문서화한 9·19 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평화 증진까지 포괄하는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한반도를 둘러싼 당사국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다자안보협력체로서 6자회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저는 6자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 이후에도 북핵 문제를 푼 역량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안보협력체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은 EU의 예를 들어 역사는 ‘평화와 공존,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당부도 덧붙입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불안과 경계의 시선을 거둘 수 있도록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 가슴속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야말로 역내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공동의 미래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은 동북아 화해와 협력을 위한 한반도의 주도적 역할을 역설하며 ‘역사가 우리에게 준 기회를 살려 나갑시다. 그래서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갑시다’는 말로 연설을 맺습니다.
노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다자간 대화의 장으로 중시했던 6자회담은 2007년 제6차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대화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대화 없는 안보가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평화라는 것이 안보의 핵심 개념이거든요. 안보가 뭐냐,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고 평화도 안보의 목적 아닙니까? 그러나 고유의 의미에서 우리가 안보라고 얘기할 때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활동이지요.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지요. 전쟁에서 이기는 안보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면 좋겠습니다.”
- 2006.12.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