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도 대정부질의하고서 굉장한 평가를 받았는데 그때 우리한테 뭐라고 했냐면 ‘지도자와 지도자 아닌 사람의 구별점은 연설문을 스스로 쓸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 스스로 쓰려면 그 문제가 절실해야 돼.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요. 나는 그게 노 대통령의 힘이었다고 봐요.
얼마 전 출간한 2002년 대선 구술기록집 《선택의 순간들》 중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구술 내용입니다. 국민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소통합니다. 철학과 시대정신을 담은 연설문으로 국민에게 국정현안을 공유하고, 합의와 이해를 구하고, 때로는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랬습니다.
연설을 사랑한 대통령…심장이 조이고 손 떨리던 기억
워낙 연설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애정이 깊으시고 어느 대통령님보다 아마 연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으셨나, 그리고 거기에 할애하는 시간도 많으셨고 연설 쓰는 사람들의 고충이라든가 그런 것들 제일 잘 아시는 분이 아니셨나…
최근 《대통령의 글쓰기》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강원국 참여정부 청와대 연설비서관의 회상입니다. 강원국 비서관은 2012년 노무현재단과 구술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애정이 깊은 만큼 연설문에 들이는 시간도 많은 대통령이었다고 강원국 비서관은 설명합니다. 그랬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편했습니다. 2005년 국회 국정연설에 얽힌 일화입니다.
복도 불도 다 끄시고 깜깜한데 저쪽에서 나를 부르시길래 정말 그거는 불길했죠. 연설 때문에 부르시는데, 내일 연설인데 부르시길래 ‘야 이거 정말 큰일 났다’ 해서 올라가서 관저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불은 깜깜한데 대통령님 노랫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면서 저쪽에서 오시는 거예요. 근데 정말 가까워오는데 막 심장을 조여 오는 느낌이었는데 오셨어요. 오시더니, 처음 시작은 항상 그러세요. ‘조금만 손보자. 생각난 게 있어서 그래’ 그래서 이게 갈수록 (기존 연설문과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내려오면서 도저히 (시간 안에) 안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로 안 됐어요. 그런데 새벽 세 시쯤에 대통령님이 전화를 하셔가지고 ‘어디까지 썼노?’ 그러시더라고요. ‘다 안됐지?’ 그래서 ‘인제 거기까지 된 거를 나한테 넘겨 달라, 그리고 니들은 자라. 몇 시에 돌려주면 인쇄할 수 있노?’ 그래서 ‘다섯 시 반에는 주셔야 됩니다’ 그렇게 했더니 정확히 다섯 시 반에 전화를 하셨어요. 메일로 저희가 보냈거든요. 딱 메일 딱 왔는데 ‘노무현’해가지고 메일에 이름이 노무현밖에 안 찍혀 있어서 딱 왔어. [웃음] 딱 보니까 우린 열면서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더라고. 왜 그러냐면, 대통령께서 말씀을 전화로 어떻게 하셨냐면, ‘끝은 못 냈다. 니들이 마무리는 해라. 나도 졸려서 자야 되겠다. 나도 연설해야 될 거 아니냐?’ 연설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하는 연설이라 대통령님 주무시고 가셔야죠. 그런데 이제 [메일을] 여는데 조마조마 한 거야. 마무리가 안 되어 있으면 우리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딱 보니까 끝까지 다 쓰셨어요. 정말 끝까지 다 쓰셨어요. 마무리라는 말씀은 오타나 이런 거 있는지 봐달라고 하신 건데 오타도 없고 진짜 완벽하게 쓰셨어요.
애정은 깊었지만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독회(讀會)’라는 절차를 통해 내용을 점검하고 의견을 들었습니다. 토론했고, 끝내 관철되지 않는 지점은 수용했습니다. 계속해서 강원국 비서관의 말입니다.
독회 할 때는 그렇게 항상 합리적으로 결정하셨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항상 들으셨어요. 들으셨지, 무슨 뭐 본인 고집대로만 하시지는 않았죠. 원래 대통령 연설이라는 게 뭐 대통령 개인으로서 본인의 개성과 철학과 이런 것들이 다 담긴 연설이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게 또 있잖아요. 반드시 지켜야 될 그런 것들, 잘못됐을 때 미치는 파장, 대통령 연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대통령님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자신의 말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한 리더
대통령의 연설이 주목받는 때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언론이 막말, 품위가 없다며 색깔을 덧입혔던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제대로 읽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최근 출간한 《대통령의 말하기》에서 주어진 원고를 낭독하기보다 대화하듯 말하기를 좋아했던 노 대통령의 스타일과 그에 따른 갈등을 소개했습니다.
그는 수시로 원고에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일정에서는 원고를 읽기보다는 대화체를 선택했다. 메모가 있긴 했지만 키워드 중심의 텍스트였다. 일각에서는 ‘대화체’가 ‘대통령답지 않다’고 지적하곤 했다. ‘즉흥적 발언’이 ‘말실수’나 ‘실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중략) 시비는 이미 임기 초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은 2003년 5월에 있었던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 오찬간담회에서의 언급이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역설과 반전을 통해 분위기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중략) 끊임없는 갈등이 있다. 솔직하고 친근한 지도자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관념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노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자는 말로써 정치를 합니다”라는 2006년 12월 28일 정책기획위원회 신규위원 위촉장 수여식 및 오찬 발언은 민주주의자로서 노 대통령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다시, 《대통령의 말하기》입니다.목차사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