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가을②]
농민들에게 전하는 못 다한 말
고즈넉한 들판 황금물결 빼곡히 들어선 추수의 계절입니다. 연이은 태풍으로 모진 한 해를 지내왔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고단했던 시간을 짐짓 속으로만 삭였을 농민들이었을 것입니다.
2008년 9월 2일 <제7회 경상남도 여성농업경영인대회>에서 농민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의 말을 건넸던 노무현 대통령. 풍족한 가을을 위해 항상 같은 곳에서 잠잠히 땀흘려주시는 농민들과 이번 사료이야기를 함께하고자 합니다.
※<제 7회 경상남도 여성농업인경영인대회> 연설 영상은 본 페이지 하단에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2008년 9월 2일 <제7회 경상남도 여성농업경영인대회>에서 농민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제가 이 자리에 초청… (한참 머뭇거리다) 될 수가 없지요. (방문객 웃음, 대통령 다시 머뭇거리다) 그래서 처음 초청 받았을 때 여기 불러다 놓고 작살낼라고 그러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방문객 웃음)”
경남 김해시 진영읍 공설운동장 모인 경남 각 지역 여성 농업인들은 웃음과 큰 박수로 대통령의 첫 인사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과 말 사이 잦은 공백과 어딘지 겸연쩍은 듯한 웃음은 행사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조금은 대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이 대통령을 그렇게 조심스럽게 만들었을까요.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 한-칠레 FTA 비준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 제2차 쌀 협상이 있었지요…. 그 정도이면 괜찮을 텐데 제가 깃발을 들고 한미FTA를 협상을 시작하고 체결까지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 추진했던 52개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농민들의 원성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FTA 논의가 한창이던 당시 ‘농업을 희생양 삼아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한다’거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일각의 우려가 뒤따랐습니다.
혹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FTA 신봉자’, ‘신자유주의자’ 등으로 규정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단순히 세계화와 개방을 능사로만 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떻든 그동안 여러분, 종합해서, 참 미안합니다. 저로서는 안 열고 싶었습니다…. 농민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대세이고, 조금 전에 말씀 드렸듯이 농업은 새로운 차원에서의 경쟁, 새로운 차원에서의 차별화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인 것 같고, 그래서 정부가 이제 농민들 걱정하지 않게 모든 뒷바라지를 좀 잘 해드려야 되는데, 그 점에 있어서 충분히 했는지에 대해서 저도 항상 마음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부분 개방은 호·불호를 떠나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 농업도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만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농가의 고연령화와 농업인구 감소 문제를 고려할 때, 무조건적인 농가의 보호만이 능사는 아니라도 판단했습니다.
다만 개방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경제 각 부문들이 세계적 흐름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조력하고 고연령 농업인구의 은퇴 이후의 복지 방안 마련, 농산물의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등을 통해 개방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개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피해들에 대비하고, 경제 각 부문들이 세계적 흐름에서 경쟁할 수 있을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조력하고자 했습니다. 동시에 고연령 농업인구의 은퇴 이후의 복지 방안 마련, 농산물의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통해 개방의 압력을 이겨내고자 하였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농업농촌 종합대책(투융자계획) 119조 원(2004~2013)을 편성했고, 한국농업인연합 및 농어촌 지도자들과 수 차례 간담회를 가지며 변화에 대한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자 하였습니다. 가장 민감한 문제인 쌀 시장 개방도 미국의 끈질긴 요구에도 협상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대체작물 개발이나 품목별 경쟁력 확충 방안 등 농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연구에도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닥친 개방에 대해 정부도 농민들도 마음을 추수를 겨를이 없었던 듯합니다. 농민들도 개방 자체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대책을 더욱 구체화시켜주기를 요구하였고, 대통령은 개방과 민심 사이에서 계속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충분히 여러분들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개방의 대세에 밀려서 농민들한테 가슴 아픈 일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잘하지 못한 것이 참 많습니다. 끄럼에도 오늘 초청해주시고 따뜻하게 이렇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 대통령 아니니까 여러분들한테 이제 미움 받을 짓 할 일 없구요. (방문객 웃음)”
대통령은 못내 미안했던 마음을 진영 운동장 한 가운데서 마침내 쑥스럽게 전했습니다. 스스로가 농부의 아들이었고, 퇴임 이후 ‘농사꾼’으로 돌아간 대통령이었기에, 농민들에 못다 했던 그 날의 말엔 어느 때보다 진심이 묻어나왔습니다.
최근 농가에서 전해져 온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FTA 체결로 농가의 수출 부진을 예상했었으나, 지난 해 41억 3000만 달러의 농축산물 수출을 기록하며 수출입에서 한국이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한국 농산물이 ‘고품질’이라는 인식을 굳히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무엇보다 지난하고 모진 한 해 한 해를 묵묵히 버텨주신 농민 여러분의 결실일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못다 했던 말들을 전하며 농민 여러분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하고자 합니다.
<제7회 경상남도 여성농업경영인대회> 축사 영상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