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애서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동안 이발을 담당했던 정주영 씨를 만났습니다. 그가 대통령을 처음 안 것은 1988년입니다. 일터가 여의도 국회 인근 한 호텔 사우나 이발소였는데,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 가끔 들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머리 손질을 드렸고, 그 인연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이발사로 일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청와대 이발사 소재의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평범한 이발사의 눈에 비친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대통령은 눈도 감히 마주칠 수 없는 존재로 등장하고, 이발하는 동안 무장한 경호원이 감시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영화와 비교한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정주영 씨의 기억에 노무현 대통령은 “소탈하고, 배려심 많은 따뜻한 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발하는 동안에도 그가 긴장할까봐 먼저 농담을 건네고, 말도 항상 존대를 했다고 합니다.  

정주영 씨는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에 대통령을 이발했던 도구를 기증했습니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는 대통령 이발 때 사용했던 가위, 빗, 면도기, 분첩 등이 들어 있습니다. 분첩 안에는 대통령 생전의 머리카락들도 남아 있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정주영 씨의 특별한 기억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회가 구술 기록한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꾸밈을 싫어한 소탈하고 마음 따뜻한 분"

'노무현 대통령 이발사' 정주영의 추억과 회한

청와대 이발사 정주영 씨가 기증한 노무현 대통령 이발 도구들

“대통령님은 배려심 많고 마음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와대에 들어가 이발을 해드렸죠. 그런 저에게 대통령님은 ‘영업하는 데 지장은 없느냐’고 걱정해 주시고, ‘바쁜데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하다’고 마음을 써주셨어요.”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전속 이발사 정주영 씨(64). 대통령 후보 때 해드린 머리 손질이 인연이 되어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했다. 그의 일터는 여의도 국회 인근 한 호텔 사우나 이발소다.

“높은 분들 이발하려면 처음엔 긴장되잖아요. 그럴 줄 아시고, 늘 먼저 말씀을 건네셨어요. 그러면서 꼬박 존대를 하셨죠. 제가 몇 번이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라고 해도, ‘그게 잘 안 되어요. 그냥 갑시다’ 하시는 거예요. 어느 누구에게나 함부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직원에게도 마찬가지였죠.”

대통령의 배려 덕에 정씨는 일을 하면서 불편했던 적이 없다. 대통령 이발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주 일요일 저녁 7~9시 사이에 했다. 이발하는 동안 대통령은 잠도 자고 TV 시청도 했다는데, 그 시간대 방송하는 고교생 퀴즈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을 자주 봤다고 한다. 정씨의 기억에 대통령은 퀴즈도 잘 풀었고, 정답을 맞히면 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제게 ‘항상 건강해 보이는데 운동 많이 하느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 제가 ‘직장에 헬스장이 있어 매일 합니다. 대통령님은 바쁘셔서 운동 자주 못 하시죠’ 하고 했더니, ‘청와대에서 자전거도 타고, 혼자 개발한 스트레칭도 한다’면서 ‘푸시업 마흔 개는 거뜬하다’는 거예요. 그리곤 제가 보는 앞에서 푸시업을 하시는 거 있죠. 정말 소탈하신 분이었습니다.”

2004년 탄핵 기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사진은 2004년 5월 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청구 기각 결정 다음 날 열린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모습

소탈한 분, “푸시업 마흔 개는 거뜬합니다”
정씨와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씨의 이발소가 국회에서 가깝다보니 예나 지금이나 많은 정치인들이 오가는데,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가끔 들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단골이 되었고, 당선자 시절에도, 취임식 전날에도 머리를 만져드렸다.

“대통령 선거 끝나고 이튿날 오셨어요. 들어오시면서 제게 ‘머리를 멋지게 해줘 당선됐다’며 ‘고맙다’고 인사하시는 거예요. 감동이었죠. 그리고 여느 때처럼 옷을 벗으시곤 욕탕으로 들어가셨어요. 신분이 바뀌어 경호원이 둘씩이나 따라왔는데, 어쩔 줄 몰라 했죠. 나중엔 경호원들까지 욕탕으로 불러들이시더라고요. 당선자 시절 몇 번 더 오셨는데, 손님들과도 스스럼없이 함께 하셨어요. 대통령님과 벌거벗고 악수했다고 자랑하는 손님들도 있었죠. 그러면서 경호원들에게 하신 말씀이 ‘나 때문에 불편 주지 말라’는 거였어요.”

청와대에서의 대통령 이발은 주로 관저에서 했다. 대통령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머리 모양을 보면 8 대 2 가르마를 탄 아저씨 스타일이었는데, 정씨는 대통령이 너무 평범하게 보여서도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나름 스타일을 만들어 갔다고 한다. 대통령이 워낙 꾸미는 걸 싫어해 염색도 한듯 안한 듯 보이게 하고, 머리숱이 많아 평일에는 손수 드라이 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서 파마를 한 적도 있었다.

대통령은 이발할 때 별다른 주문 없이 정씨에게 일임했다는데, 딱 한 번... 2004년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머리를 짧게 잘라 달라’고 해서 난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씨는 최대한 덜 짧게 자르려 애썼는데, 대통령은 ‘편해서 좋다’며 계속 ‘더 잘라 달라’고 했단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 청구 결정이 있던 날에도 이발을 하셨어요. TV를 켜놓았는데, 면도를 해야 해서 의자를 눕혀 드렸죠. 대통령님은 눈을 감고 계시고, ‘기각’이 발표되자 사람들 모두 환호하고 박수를 쳤죠. 그때 권양숙 여사님이 노크를 하시고 문을 열더니 ‘잘 됐어요’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대통령님은 ‘알았어요’라는 말씀뿐이셨죠”

아닌 게 아니라 당시 대통령의 짧은 머리는 사람들 입길에 오르내렸다. 정씨 이발소의 단골손님들은 속도 모른 채 ‘왜 대통령 머리 모양을 그렇게 해놨냐’고 한 마디씩 하고, 모 국회의원이 ‘깍두기 머리’란 표현을 써서 난처했다고.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대통령은 이발을 하면서 ‘제 머리 때문에 마음고생 많았죠’ 하며 먼저 묻더란다.

2008년 4월,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에서의 노무현 대통령. 이발사 정주영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소탈하고 꾸밈을 싫어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대통령 퇴임, “이제 분장 안 해서 좋습니다”정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매사에 누구를 대하든 건성이 아닌 진심을 보여준 분으로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씨의 딸이 결혼할 때 대통령께 축하 메시지를 부탁했다는데, 축하 카드엔 대통령이 애용한 글귀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이라고 써 주었다고 한다. 사적인 축하 메시지였기에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노무현’이라고 사인한 세심한 면모가 엿보이는 카드다.

대통령과 이발사 사이에 나눈 대화라야 사적인 이야기가 전부지만, TV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가끔 대통령의 혼잣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생각나는 것은 열린우리당이 깨질 때 ‘정치가 지역간 경쟁으로 가서는 안 되는데’라며 아쉬워하더란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퇴임 전날에도 정씨는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의 이발을 했다. 그리고 그날, 청와대에 처음 들어올 때 가져다 놓았던 이발도구 가방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에서 마지막으로 이발을 해드리는데, 대통령님이 ‘이제 지긋지긋한 화장 안 해서 좋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울적한 마음에 농을 던졌죠. ‘그래도 정치인은 변장도 하고, 위장도 하지 않습니까’라고. 그 말을 듣더니 한참 웃으시더군요. 그리고 제가 ‘고향 가셔도 내려가 머리를 만져드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시더군요. 그 전에는 이발이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그날 인사는 ‘안녕히 가세요’였어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해 가을, 비서진에게 연락이 왔다. ‘대통령님이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식 참석차 서울에 가시는데, 이발 좀 해드릴 수 있겠느냐’고. 마침 정씨가 해외여행 차 공항서 막 출국수속을 끝냈을 때였다고 한다. 정씨는 ‘그때 이발을 못 해드려 가슴에 두고두고 응어리로 남아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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